군대 가기전에 자양고 동기들과 함께 불렀던 입영열차 안에서...




톱스타에서 신용불량자…억대 연봉의 세일즈맨 된 김민우
“인생의 벼랑 끝에서 ‘세일즈’라는 희망, 과감히 내 자신을 던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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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영열차 안에서’, ‘사랑일 뿐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1990년대 톱스타 김민우를 만났다. 현재 그는 음악을 하지 않고 있다. 대신 깔끔한 정장 슈트를 차려입고, 고급 승용차를 파는 세일즈맨이 됐다. 인기의 정상에서 바닥으로 추락, 다시 재기에 성공하기까지 김민우의 솔직한 인생 스토리를 들어본다.

톱스타 시절, 딱 3개월이었다
김민우(41)는 많이 변해 있었다. 우리가 알던 시절보다, 훨씬 멋있고 활기찼으며 에너지가 넘쳤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바꾸고 이끌었기 때문일까, 매사에 여유와 당당함 그리고 겸손함이 묻어났다. 현재 그는 한성자동차 벤츠 영업사원이며, 판매왕이라는 타이틀이 붙을 정도로 높은 실적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이런 성공이 있기까지 그는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의 달고 쓴맛을 경험해야 했다. 1990년대 ‘입영열차 안에서’, ‘사랑일 뿐이야’를 통해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던 김민우는 당시의 성공이 지금도 꿈만 같다고 한다.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어디에선가 제 노래가 들려서 깜짝 놀랐어요. 그때 매니저에게 전화가 왔어요. ‘민우야~ 대박이야!’ 하루아침에 신인 가수에서 인기 가수가 된 거죠. 얼떨떨했죠.”

하지만 달콤했던 순간은 너무도 짧았다. 딱 3개월 동안 그는 한국 가요계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입영열차 안에서’가 절정의 인기를 누릴 무렵, 소속사에서는 입대를 해서 인기를 극대화하자고 제안했고, 급하게 군 입대를 결정했다. 하지만 제대 후 그가 다시 무대로 돌아왔을 때 이미 사람들의 기억 속에 ‘김민우’는 없었다. 2집, 3집 앨범을 내놓았지만, 더 이상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원하지 않았다.

“무대가 전부였던 가수가 무대를 잃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시죠? 내 존재가 없어진 것 같은 고통이에요.”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기에 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수에 대한 희망의 끈을 이어갔다. 밴드를 결성하고 빚을 내서 음악 작업실도 마련했다. 하지만 핑크빛 희망도 잠시, 한 정신병자의 방화로 꿈으로 가득했던 작업실은 순식간에 불에 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작업실을 마련하면서 생긴 수억원의 빚과 ‘신용불량자’라는 타이틀만이 그에게 남게 되었다.

“제가 당시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죠. 곁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떠나고, 수억원의 빚이 저를 옥죄어왔어요. 꿈도 없었고, 희망도 없었죠. 무기력하고 답답한 생활이 계속되면서 잠을 잘 때 다음날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어요.”

그의 인생에서 암흑 같은 터널은 그렇게 계속 될 줄 알았다.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다. 절망과 좌절 속에서 희망이 필요했다. 그런 인생의 절박함 앞에서 가수 김민우가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세일즈’였다.

“당시 저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네가 해봤자 얼마나 하겠느냐’, ‘연예인이 자동차 영업을 할 수 있겠냐’며 반신반의했죠. 하지만 저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어요. 세일즈가 제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거든요.”

가수 김민우를 버렸다
사람들의 우려는 사실이었다. 1990년 데뷔한 이후, 김민우는 다른 사람이 이끌어주는 삶에 익숙해 있었다. 그는 늘 사람들로부터 대접받는 입장이었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영업은 ‘내가 주인공이 아닌, 상대방을 최고로 모시는 일’이다.

“제가 워낙 내성적이고 타인과의 관계를 두려워하는 성격이었어요. 게다가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욱 두려워했죠. 때문에 세일즈는 정말 일생일대의 도전이었어요.”

절망의 늪에 빠져 있을 때 그를 세일즈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사람은 로열 오토모빌의 김태성 사장이었다. 김태성 사장의 자신감 넘치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본 순간 “저도 영업을 해보고 싶어요”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이런 김민우의 말에 김 사장은 “김민우씨, 영업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데요?”라며 거절했다.

하지만 김민우는 김 사장을 붙들고 “한 번만 기회를 달라”며 끈질기게 부탁했고, 결국 “오케이”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김 사장은 그를 미용실로 데리고 가서는 “이 친구, 머리 좀 잘라줘요. 재규어처럼 멋지게!”라고 말했다. 이날 ‘재규어처럼’이라는 말은 김민우에게 마치 앞으로의 인생이 희망으로 가득할 것처럼 느끼게 해줬다. 이렇게 김태성 사장은 그에게 운명 같은 길을 열어준 첫 멘토가 됐다.

연예인이던 그가 ‘영업’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자기 자신을 버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왜 가수 김민우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되돌아보았다. 고통스러운 과거를 하나하나 되짚어보니 왜 실패를 했는지, 왜 사람들이 곁을 떠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들여 만든 1집과는 달리 2, 3집은 인기에 힘입어 속전속결로 만들었고 한순간의 인기가 영원할 것처럼 느껴져 초심을 잃고 자만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실패를 늘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했다.

“실패한 이유가 나 자신에게 있었는데 주위 상황과 사람들을 탓하는 데만 급급했어요. 그런데 그 원인이 ‘나’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엉킨 실타래가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과거가 제 삶의 밑거름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자, 뭐라 말할 수 없이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김민우가 세일즈맨이 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과거 그가 어려울 때 원망했던 사람들을 찾아가서 용서를 비는 것이었다. 서로 앙금이 있었던 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뿌듯함과 자신감, 인생에 대한 기쁨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다니며 잃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다시 얻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버리는 일을 하나씩 시작했다.

세일즈를 시작한 후에는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사랑일 뿐야’를 불렀던 김민우를 기억하십니까? 제가 자동차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꼭 한번 찾아주세요”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한창 일을 하고 있는 회사, 병원 등에 무작정 들어가 명함을 돌리다가 쫓겨나기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한번은 길이 막히는 순간 차에서 내려서 뒤차의 운전자에게 명함을 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때 그는 ‘진짜 김민우가 자신을 버렸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다.

입사 1년 만에 판매왕으로 승승장구
자신을 버리면서 열과 성의를 다했던 김민우의 노력은 곧 ‘성과’로 이어졌다. 한성자동차에 입사한 그는 입사 1년 만인 2006년 3월, ‘판매왕’이라는 자리에 오를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1, 2, 3 인사법’은 그만의 특별한 판매 노하우 중 하나다. 허리를 굽힌 뒤 다시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기까지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는 것이다. 계약 여부에 상관없이 매장을 찾는 모든 고객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인사를 한다. 김민우에게 이 인사법은 고객에 대한 배려이자 예의였는데, 뜻하지 않게 계약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차를 타고 매장을 떠났던 고객이 유턴을 해서 돌아온 것. 그 손님들은 김민우의 정중한 배웅에 감동을 받아, 다시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아무리 가수 출신이라도 무대가 아닌 곳에서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김민우는 고객에게 그의 진심이 전해질 수만 있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노래를 했다. “저는 차를 팔면서 ‘인간 김민우도 같이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해요. 그리고 명함을 줄 때 ‘심장’을 건넨다는 생각을 해요. 제 진심이 그 사람에게 전해질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했어요.”

한번은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는데, 방송인 허참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지방에 갔다가 오는 길인데 차가 갑자기 방전이 됐다며 급히 와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 곧 가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술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덕분에 허참은 김민우를 더욱 신뢰하게 됐고, 늘 사람들에게 ‘믿을 만한 사람’이라며 소개를 해줬다.

사람들은 김민우가 연예인이라서 자동차 영업에 성공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연예인이라는 점이 더 독이 되는 경우도 많다. 고가의 승용차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얼굴이 알려진 영업사원에게 자신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을 꺼렸던 것.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진심을 전하기 위해 더욱더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던 어느 순간, 거래하던 은행의 지점장에게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왜 신용카드를 만들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김민우는 자신의 신용불량이 해지된 것을 모르고 있었다. 한성자동차에 입사하고 2년 만에 빚은 모두 청산했고, 어느새 은행의 VIP 고객이 돼 있었던 것. 그 전화를 받고 영원히 신용불량자로 살 것 같았던 자신이 어느새 은행의 특별 고객이 됐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고 한다.

아내와 아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요즘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빚도 청산하고, 신용불량자에서 회복되고, 떠났던 사람들도 돌아왔을 뿐 아니라 그의 주변에는 이제 그를 좋아하고 믿어주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러던 중 지금의 아내 한혜남씨(35)를 만났다.

그는 지인의 소개로 만난 아내를 보면서 ‘이 사람이구나’ 하는 직감을 느꼈다.
“한번은 아내를 부모님과 식구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 갑작스럽게 불렀어요. 그랬는데 싫은 내색은커녕 오히려 식구들에게 무척 잘하더라더군요. 특히 어머니가 가실 때 ‘어머니 제가 택시 타는 데까지 모셔다드릴게요’라면서 팔짱을 끼는데, 그 모습을 보고는 감동을 받았어요. 그때 결정적으로 ‘이 사람이구나’ 생각한 것 같아요(웃음).”

그 후 김민우는 “내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남자는 못 되겠지만, 좋은 남자가 될 수는 있을 것 같다”며 프러포즈를 했다. 아내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남편이 아침밥을 먹고 출근할 수 있도록 신경 써주는 마음 따뜻한 여자다. 주위에서는 그런 아내를 두고 ‘요즘 그런 사람 만나기 힘들다’며 부러워한다.

지난 2009년 1월 결혼을 한 그는 결혼 5개월 만에 예쁜딸 민정이를 얻었다. 요즘은 아이가 새벽에 자꾸 깨서 잠을 설치지만, 살면서 요즘처럼 행복한 적이 또 있을까 싶다.

“아내, 그리고 아이 이렇게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출근해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게 어떤 때는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기쁘죠. 제가 계속 절망만 하고 있었다면 절대 얻을 수 없었던 행복이잖아요. 그러고 보면 제가 그렇게 운이 없는 놈은 아닌 것 같죠?(웃음)”

이제 가수 생활에 대한 미련은 없다. 다만 평생 할 줄 알았던 ‘노래’에 대한 열망은 여전하다. 그의 꿈은 소극장을 빌려서 그동안 도움을 받았던 많은 사람들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공연을 하는 것이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김민우는 올 초부터 대경대학에서 자동차딜러과 교수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다. 벤츠 판매왕으로 소문이 난 뒤, 수없이 많은 강의를 해왔지만 학교라는 공간은 또 다른 설렘을 느끼게 해주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세일즈’를 가르치진 않아요. 사실 학생들은 ‘딜러를 하면 얼마나 벌 수 있느냐?’는 것을 가장 궁금해하죠. 하지만 제가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건, 세일즈의 스킬보다는 ‘진심으로 마음을 팔 수 있는 열정’이에요. 상대에게 진심만 전할 수 있다면, 그 어느 분야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김민우는 세일즈를 하다 보니, 모든 인생사가 세일즈 같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 진심으로 상대방을 대한다면 어느 분야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의 이 같은 논리는 매우 간단하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김민우는 그걸 해냈고, 그렇게 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최근 그는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내려간 「나는 희망을 세일즈한다」를 출간했다.

실패를 겪어본 사람만이 희망을 향해 더 힘차게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스스로 보여준 김민우. 그에게 ‘포기’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려운 때일수록 나 자신을 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귀한 교훈을 얻을 뿐이다.



Posted by 노을삼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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