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을 그리워 하는 마음이 너무 간절해질 때에는 인터넷으로 한국뉴스도 보고 개그프로그램도 보고 이렇게 인터넷으로 여러분들의 일상을 구경하며 웃고 눈물 짓기도 하는 서른을 넘겨버린 젊은이입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남녀간 데이트 때 더치페이 문제, 루저 소동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제가 받은 사랑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안녕하세요 점점 동이 터오네요. 저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무리 짓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글을 다시 쓰려니 표현이 다소 서툴러도 이해해주십시오.
큰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부도를 맞으시고 우리 모두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죠.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며 그 등쌀을 피해서 생활하다가 입 하나라도 덜고 학비걱정이나 좀 덜려고 군대를 자원해서 갔습니다.
제대 후에도 집형편은 나아진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학기 휴학해서 돈을 벌고 한학기 다니다가 한학기 또 휴학하고 이런 생활을 했습니다.
경남의 한 중소도시 대형마트에서 일했는데 커피나 햄 같은 거 시식할 때 나레이터모델들을 고용해서 유니폼 입혀서 시선을 끌고 손님들의 시식을 종용하는 역할을 맡기는데 그 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한 모델이 있었어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 잘하는 모델들 틈에서 유독 말 한마디 못하고
오히려 손님들이 다가와서 알아서 시식하고 물어보는 희한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더라는 거죠.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인상 깊어서 저도 다가가서 시식하고는 몇 가지 물어보고 했는데
이 모델분은 나레이터모델답지 않게 말하는 것도 너무 수줍어하고 얼굴 빨개지고...ㅎㅎ
원래는 밤늦게까지 매장정리하고 맨마지막에 퇴근을 하지만
그날은 죽어도 일찍 가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나레이터모델들 마치는 시각에 맞춰 출구에서 계속 기다렸어요. 그분들이 우루루 몰려나와서 각자 집으로 가기도 하고 몇몇은 시내에서 놀기 위해 같이 택시 타고 가는데
이 여성분만 외톨이처럼 혼자 버스를 기다리더라구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저..매장에서 일하는 OO인데, 남자친구 없죠? 저랑 사귀어보는 건 어때요? 저 정말 괜찮은 놈인데요..제발요...주절주절.." 하면서 울상을 지으니까 처음엔 깜짝 놀라더니
"아! 기억해요" 하면서 아는 척을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폰번호를 얻었어요. 저는 돈이 없어서 휴대폰도 없었구요.
그래서 시식행사가 잡힐 때마다 우린 늘 보게 되었죠.
그 친구는 일부러 마트 행사를 자원했구요. 일하기 편한 대신 페이가 적어요. 그래도 제가 뼈 빠지게 일하는 것보다 나레이터모델분들이 더 많이 받으시더라구요.
외부행사 나갈 때는 더 많이 받고..
지명되면 거기서 더 받고..
우린 너무 가난한 커플이라서
남들 먹는 커피숍이나 스파게티점이나 피자헛에도 못갔어요. 그리고 학비도 모아야 했고 집에도 보태야 했던 저보다는
아무래도 돈을 좀더 받고 집안형편도 조금 나은 여자친구가 데이트비용을 거의 부담했구요. 저는 거지 중의 상거지, 개털 중의 상개털이었어요.
집에서 쫓겨나면서 옷도 못가지고 나와서
때 묻어도 티도 안나는 아래위로 군복을 구해서 입고 다녔거든요. 잠바도.
막 입고 아무리 빨아도 티도 안나니까요.
크리스마스 때는 길거리의 붕어빵이랑 군밤, 호도과자 섞은 게 우리의 만찬이었고 그걸로도 너무 행복해했어요.
여중여고 앞 떡볶이도 우리의 주 메뉴였구요.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그런 거 우리한텐 사치였어요.
다니다가 꽃바구니 버려진 게 눈에 띄면 주워서 기념일에 부직포와 솜을 사서 뽑기한 작은 인형과 ABC초콜렛이랑 칸쵸 같은 거 담아서 선물했구요. 화려한 케익과 포도주와 잔 두 개도 그림 그려서 앞에 두고 실제로는 초코파이랑 델몬트 병쥬스로 상상 속의 파티를 벌이며 즐거워하곤 했네요.
저는 몰라도 여친은 착하고 키도 크고 단아한 인상이기 때문에 아마 길거리 고백도 받았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한번도 그런 내색을 안해서 잘 몰라요.
학교 다니면서도 과외도 하느라 만날 시간이 정말 없었어요.
저는 휴대폰도 없어서 연락도 안되는 사람이었구요. 언제나 제가 연락을 했죠.
한밤 중에 끝나서 언제나 공중전화로 잠깐 통화를 하고
일요일에야 좀 시간을 갖고 만날 수 있었네요.
(나중에 들었는데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여름에는 비 맞아가면서, 겨울에도 외부행사만 고집했대요. 찬바람 부는데도 짧은 치마에 배 드러나는 옷 입고 행사 했었대요. 돈 더 받아서 제 용돈 주고 제 학비 보태주려구요 ㅠㅠ 걔 친구들한테서 들었어요. 자외선과 대로변 자동차 매연과 먼지, 그리고 겨울바람에 얼마나 배가 아프고 피부가 깎였을까요..)
학교 다니는 내내 여자친구한테 용돈을 얻어 살았어요.
처음엔 안 받았는데 여친이
"나랑 결혼할 생각 없어? 결혼할 생각 가지고 있다면 돈 받아. 내돈이 네돈이니까 부담갖지 마. 그리고 친구들한테 얻어먹지만 말고 가끔 사주기도 하고 인심 잃지 말구. 남자는 인맥이 재산이잖아."
그 친구가 이렇게까지 얘기해서,
나중에 결혼해서 다 갚을게 하고 용돈을 받아썼습니다. 걔네 집에서 반찬 다 갖다 먹었습니다. 언제는 쌀도 가져왔더군요. -_-
그 전엔 기본반찬인 김치 살 돈은 물론이고 쌀 살 돈도 없었거든요. 정말 완벽한 거지였네요. 현금은 물론 계좌지급까지 모두 정지 당해서. 맨밥에 간장을 살짝 묻혀 짭짤하게 비벼먹는 게 매 끼니의 반복이었어요.
라면 사먹을 돈도 없어서 마트에서 라면박스 옮기다가 충격 받아서 부서진 게 가끔 나오는데 그걸 100원 씩에 사서 국 대신으로 국물 먹곤 했던 기억이 있네요.
자장면과 짬뽕이 너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중국집 앞에서 냄새만 배부르게 맡고 발걸음을 돌리길 수십번.. 결국 상가에서 내놓은 그릇에 담긴 짬뽕국물을 마시면서 그 갈증을 달래기도했습니다.
저희집이 잘 살 때 제 동생이 사귀던 여자가 정말 착했는데 가난한 집안의 딸이어서 어머니 반대로 헤어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저희집이 가난해서인지 제가 사귀는 여자에 대해 어머니는 별 말씀을 못하시더라구요.
고졸에 집도 그냥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집이라는 이유로
예전 같았으면 결사반대 하셨을 어머니께서..
그러다가 저희 아버지 사업이 다시 풀리기 시작해서 돈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집도 찾고 아버지 어머니도 각각 자가용 굴릴 정도로 어느 정도는 안정되었습니다.
제 여친에게 그런 말은 꺼내지 않았구요. 아직도 그렇게 알고 있을 겁니다.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갑자기 돈 생겼다고 돈 쓰고 다니면 또 예전으로 돌아가버릴까봐 너무 무서웠거든요.
집에 빚이 너무 많아서 아마 나랑 결혼하면
부모님 빚을 갚느라 40살 넘게까지 고생할 수도 있다 그러니 생각 잘하라고 해도 제 여친은,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대. 좀 덜 먹고 덜 입고 아껴서 열심히 살며 조금씩 갚아가면 설마 죽을 때까지 못 갚겠어? 난 자기를 믿어. 내 걱정이라면 하지마. 미안한만큼 평생 나만 사랑해주면 될 것 같은데? "
그 상황에서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미안해서..너무나 미안해서..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결심했을 때도, 나레이터모델 친구들이 다 말렸대요.
술자리에서 저한테 직접 얘기까지 하더라구요.
착한 희영이 배신하면 자기들이 가만히 안둔다고. 걔 친구들이 다 말렸어요.
유학가면 잘사는 여자들, 이쁘고 어린 애들도 수두룩할텐데 바보같은 너는 버려질 거라고.
미국에 와서 어학코스를 끝내고 전략협상 분야를 공부했어요.
쉽게 말해 Negotiator라고 하는데 협상전문가, 협상컨설턴트라고 이해하시면 돼요.
한국과 미국이 무역과 시장개방 등의 문제로 FTA 할 때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라는 분이 한국측 수석대표로 주도하지 않았었나요? 그런 역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또, 범죄현장에서 인질이 있을 때나 자살시도자가 있는 현장에 급파되어 일반경찰들이 현장 확보하고 SWAT 이 타격작전개시 하기 전에 쌍방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협상을 시도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그리고 각국간 군병력, 화기 유지 및 연합훈련 등 각종 협의를 하는 자리에 동원되기도 하고, 혹은 대형그룹들 간의 딜과 기업인수합병을 위해서 고용되기도 해요.
조금이라도 더 우위를 점해야 하고 유리한 포지션을 확보해서 우리쪽에 좀더 유리한 계약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죠.
우리 쪽에서 가장 강점으로 내세워 공격무기로 활용할 카드를 찾고, 상대 쪽의 약점을 찾아서 궁지로 몰아서 기를 꺾은 후 살 길을 터주는 식으로 며칠 동안 협상을 이어갑니다.
상대도 손해보지 않은 듯 맞춰주는 동시에 우리의 요구조건을 최대한 사수해서 최대한의 소득을 이끌어내는 거죠.
肉斬骨斷(육참골단), 捨小取大(사소취대)의 사자성어처럼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거죠. 군더더기 여러 조건들을 포용하는 대신 큰 덩어리 두 세 개를 가져오는 겁니다. 그 과정에선 20년, 30년 후의 국제정세와 종목에 따른 계산까지 합니다. 물론 상대측에서도 날고 기는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계획이 뭔지 알 수 없어야 하는 거구요. 국제관계에서 그때의 종속관계를 위해 몇 십년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양방간 상황과 입장에 대해 몇 달 전부터 고용되어 몇 달 동안 밤새며 공부도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을 수 있구요, 계약금, 약속된 수고료 외에 성사될 경우 보너스도 받죠.
성사율이 낮을 땐 지명도도 떨어지고 금액도 낮아지고 소질이 없는 사람은 자연히 도태될 수도 있는 직업입니다.
미국에서는 많긴 하지만 아직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서 대우가 괜찮은 편이구요 한국에선 그런 전문양성과정이 없어서 아직 정부기관 및 대기업에서조차 인식이 미흡하고 금전적 대우도 미국만큼은 크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식만 제대로 이해되고 필요성이 부각된다면 블루오션이 될 수도 있겠죠.
국내엔 전문가가 너무 희귀하니까.
제가 여기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도 제 여친은 저희집이 아직 빚에 시달리며 힘들게 공부하는 줄 알아요.
그래서 수시로 돈을 송금해와요. 그거 쓰지도 않고 꼬박꼬박 모아놨어요. 일부러 말은 안했구요.
저희집 수준 어느 정도 괜찮아지고 제가 여기에서 공부마칠 때가 되니까 저희집에 선이 많이 들어온대요. 소위 돈 많은 집안에서요.
우리나라에 돈 많은 집안이 그렇게 많다는 거 처음 알았어요.
대도시 버스운송회사 소유주도 계시고, 서울 강남역 앞에 대형빌딩 몇 채 소유하고 계시는 집안도 있고, 할아버지 때부터 장관, 국회의원 해오신 권력집안도 있고, 거기다 인물도 좋다더군요. 저는 아직 못봤지만.
여기에서 공부할 때도 유학생들 모임에서 그런 집안 친구들 많았어요.
유학할 때 저도 몇 번 고백 받아봤어요. 다들 뭐하나 빠지지 않는 조건의 애들요.
일본이나 유럽애들 같은 다른 외국애들한테도 몇 번 받아봤고..
그런데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거지일 때 아무것도 보지 않고 저 하나만 품어 준 그 여자를,
어떻게 제 상황이 좋아졌다고 배신을 하겠습니까.
아직도 부유한 정도는 아니어서 유학생활 내내 일도 하고 돈 정말 아껴썼어요.
기한 지난 폐기처분 전 바게트빵 싸게 사서 끓인 우유에 불려서 배채웠어요.
레바논출신 애랑 우범지대 같은 곳에 방2칸짜리 렌트해서 돈 아끼며 지냈어요.
겨울에 전기장판 하나로 버텼고 여름엔 주워 온 선풍기.
먹을 거 없어서 쥐도 안와요. ㅎㅎ
그런데 돈 많은 집안 애들이 비싼 옷 쇼핑하러 다니고 좋은 차 구입해서 놀러다니고 파티하고, 대기업 누구 딸, 어느 병원장 딸 이런 애들이 수두룩한데 걔네 중 몇몇이 호감 비치면서 따라다니면 여러분들은 어떨 것 같은가요?
전유성씨 말씀대로,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편안해지는 거 한순간이에요.
그런데 그 여자분들...
제가 만약 죽을 병에 걸리거나 위험한 순간에 처한다면 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까요?
그 친구들에 대해선 몰라도 제 여친에 대해선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딴맘을 먹을 수가 없었어요.
돈은 정말 사람을 편하게 해주더군요. 많은 것을 해결해주고.
그런데 단지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일뿐 그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돈은 진짜사랑과 타협하거나 비교하기에는 성질 자체가 달라서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요. 단지 사랑을 해치지 않을만큼 최소한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것을요. 그래서 한처럼 맺혔던 돈에 대한 집착을 버렸어요.
이제 한국에 들어가든, 미국에 불러들이든 제 남은 인생 그녀를 위해 희생하려구요.
그녀가 제게 모든 걸 주었듯 이젠 제가 그녀를 보호해주려구요.
평생 한 여자만을 위해 살 겁니다.
죽을 때까지 제 눈 속엔 그녀 밖에 없을 거예요.
여자한텐 20대가 인생의 절반이라고 하죠?
그 가장 아름답고 싱싱한 20대를 저를 위해 버린 여자입니다.
억만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젊음을 저를 위해 버린 여자입니다.
어느 누가 사랑하는 사람을 무려 5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외국에 보내놓고 흔들리지 않고 믿고 기다려 줄 수 있을까요? ㅠㅠ 제가 유학 중에 좋은 배경 가진 여자 만나서 연락 끊고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제 심장을 누군가에게 꺼내 맡겨야 한다면 그녀에게 맡길 겁니다.
죽을 위험에 처해도 저를 위해 희생할 여자라는 걸 확신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러고보니 참 신기하게도 우리는 한번도 싸워본 적이 없네요. 첫번째 이유는, 그녀가 화를 낼 줄 모르는 착한 사람이어서입니다. 제가 특별히 화나게 했던 기억도 없지만 다른 일에도 화를 내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언젠가 집요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냥 단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자기를 괴롭히려는 의도로 일부러 그러진 않았을 것이고,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늘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자신이 답답해서 제가 화나진 않았었냐고 되물었던 사람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제가 화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제게 화를 내는 일이 있다면 그건 반드시 제게 잘못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그녀가 제 앞에서 제게 화를 내고 있다는 그 현실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고 안심할 것입니다.
화를 내건 어떻건 일단은 제 앞에 있어줬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할 것입니다.
여러분..
돈으로 할 수 있는 사랑이 가장 쉬운 사랑입니다. 좋은 차 타고 다니고, 좋은 요리 먹으러 다니고, 좋은 옷 쇼핑하러 다니고, 비싼 선물 사주고, 기념일마다 몇 만원 하는 선물바구니와 이벤트 하는 거... 돈만 있으면 어느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해주고 싶은데 해 줄 수 없어서 눈물 흘리며 미안해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진짜 당신을 위해 자기 수명도 떼어 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제게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받았던 조건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100을 가졌다면 100 모두 내어주고도 더 줄 수 없어서 미안해 하는 사람. 그런 사람과 살 수 있다면 아마 당신은 평생 사랑받고 보호받으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희영아.. 나 약속 지켰다. 절대 유학 가서 다른 여자 내 가슴에 담지 않겠다고 너한테 맹세한 약속. 그리고 앞으로도 지킬 거야.
나 너한테 붕어빵이랑 떡볶이랑 캔커피 밖에 못사주고 언제나 버스 타고 데이트 하고,
너한테 FI*A 운동화 사주려고 했을 때 네가 매장에서 도망나가서 대로변의 잡브랜드 1만원짜리 운동화 골라 신고 나 만날 때마다 그것만 신고 나오고...
나 정말 거지처럼 구질구질하게 살고 인생 막막했는데 네가 나 품어줘서 나 유학 갈 꿈도 가질 수 있었어.
유학 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오게 되어도 비웃지 않고 기쁘게 환영해 줄 네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난 돌아갈 곳이 있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거든.
너 아니었으면 아마 꿈도 잃어버리고 한국에서 대학중퇴에 하루하루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로 살고 있을지도 몰라. 앞으로도 내가 언제든 돌아갈 집 같은 네가 나한테 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안심하고 시도할 거야.
네가 전에 보낸 편지에
"자기가 너무 잘나버려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더이상 없어. 어쩌지? 자기가 그렇게 커져가고 멋있게 변해가는 동안 난 7년 동안 더 늙었고 더 무식해졌고 더 초라해졌네..
그런 자기 옆에 이런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나 자기한테 너무 미안해서 어떡하지? 그러니까..
정말정말 나보다 더 자기 마음 안에 들어오는 여자를 찾게 되면 그때 나한테 꼭 말해줘.
내가 봤을 때 좋은 여자면 안심하고 자기 보내 줄 수 있을 거야.
난 괜찮으니까 자기는 자기가 더 멋지게 날 수 있는 그것만 생각해.
대신 다음 생이 또 있다면 그땐 꼭 날 선택해줘야해.
그땐 나도 부잣집에 똑똑한 여자로 태어나서 자기한테 어울릴만한 여자로 태어날 테니깐."
희영아..
나.. 네가 보낸 그 편지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넌 모를거야.
지금 이 글 쓰면서도 눈물이 흘러서 모니터가 안보여..
내가 널 두고 어느 여잘 사랑할 수가 있겠어..
너처럼 좋은 여자는 내가 천번을 다시 태어나도 아마 만날 수 없을 거야.
네가 나한테 안어울릴까봐 걱정하는 거라면,
나 내가 배운 공부 다 버리고 붕어빵장수 아저씨로 살 수도 있어.
내가 익힌 것들 때문에 네가 힘들어하는 거라면 말이야.
내가 죽어서 하나님 곁으로 갔을 때, 내 인생에 너를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딱 그것만 말씀드릴거야. 내 인생의 모든 것은 너로 인해서 꽃 피울 수 있었으니까.
내 어머니가 나를 낳으셨다면,
지금의 나로 이렇게 키운 두번째 내 어미는 바로 너야.
내게 아무 힘도 없을 때가 있었는데
그 첫번째 시기에 내 부모가 나를 키우셨고,
그 두번째 시기에 네가 나를 키웠어.
일시귀국일지 영구귀국일지 아직 결정짓지 못했지만
한국 돌아가면 그때 처음으로 무릎 꿇고 네게 청혼할게.
우리..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사랑 지켜왔잖아.
우리 애들이 컸을 때
이 글을 보여줄거야.
그리고..
아빠가 엄마한테 이런 무한의 사랑을 받았다고,
그때 이미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자였다고,
엄마는 아무 것도 없는 아빠를 조건없이 품었고
그래서 아빠는 큰새가 될 수 있었다고,
아빠가 할아버지할머니께 생명으로 진 빚이 있다면
엄마에겐 녹 슬어 버릴 뻔한 심장과 황폐해질 뻔한 영혼의 빚을 졌기 때문에
아빠는 죽을 때까지 엄마에게 빚을 진 셈이라고,
그래서 죽을 때까지, 죽어서도 영원히 빚을 갚는 심정으로 엄마를 사랑할 거라고.
그게 내가 너희들보다 엄마를 더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니까
너희들이 이해하라고
그렇게 말을 할 거야.
사랑한다.
영원히..
...
이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그것은
평화요 안식이요 이 세상의 마지막이요 처음이다.
-정호승의 《연인》중에서-
.....
아!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저기 한국사이트랑 한인유학생 커뮤니티에 올라왔다고 동생들한테 메일도 십 수 통이나 오고 전화도 좀 받았네요. 한국의 제 여자친구는 나레이터모델 했었다고 말했던 것 밖에 없는데 저인 줄 어떻게 알았을까요?
지금은 안해요. 현역으로 뛰기엔 나이가 너무 많잖아요. 요즘은 모델에이전시에서 인력관리를 하나봐요.
새벽에 일어나서 워크샵 자료 배열하다가 여자친구가 생각나서 그냥 끄적거리다가 한국 생각 날 때 가끔 들어오는 네이트에 써놓고 나간 건데 파급효과가 굉장하군요.
뒤늦게 발견했네요. 친구들한테서 전화 받았어요. 혹시 저 아니냐고..니글 인터넷에 뜬것 같다고.. 너무너무 놀라서 심장이 터져버릴것같고 손이 떨려서 글을 칠수가 없어요 어떻게 해야할지...너무 울어서 눈도 퉁퉁............
근데 저는.. 제가 한건 너무 작은건데 한것에 비해 너무 큰 평가를 받고 있어요 크리스마스 선물로 너무 큰것을 받아버렸네요 감당할수 없을만큼. ㅠㅠ 저는 내세울수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잘할수 있는 것도 하나도 없구요 그런데 처음으로 제가 잘한 무언가를 발견했네요 정말 좋은사람을 사랑했다는 것이요
자기.. 그때 저한테 말걸어줘서 고맙고 제가 자기를 사랑할수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먼나라에서 외로우셨을텐데 힘들겠지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까지 힘들게 지내셨는지 몰랐어요 저는 한국에서 배부르게 먹고 따뜻한데서 잠도 잘잤는걸요 미안해요 저혼자 잘지내서... ㅠㅠ
오늘 모든걸 알았지만 그래도 자기한테 돈을 붙일거예요 어차피 별도움 안되는 적은돈이겠지만 받아줘요 그것도 저의 즐거움이니까요. 저를 위한것이에요. 제가 자기를 위해 아무것도 할수있는게 없어졌을때 그땐 정말 제가 쓸모없는 사람으로 느껴질거예요
제가 드리는 사랑은 아주 작은사랑이에요 작은걸 드렸는데 자기가 크게 받으셨을뿐..
자기가 저를 위해 여기에 편지를 쓰셨듯이 저도 여기에서 자기한테 답장을 쓰는거예요
자기한테 메일을 보낼까했지만 왠지 저도 이래야할것 같아서...
언제인가 자기의 어떤점이 좋아서 사랑하느냐고 물어보셨었죠? 그때, 처음엔 없어보여서 좋았고, 좀 지나서는 사람하나 살린다는 심정으로 희생한다는 생각이었고, 점점 지나면서 내팔자려니 한다고 장난친거 기억해요? ^^ 사실은.., 자기의 사랑을 확신한 계기가 있었어요
언제인가 떡볶이집에서 떡볶이먹다가 뜬금없이 제 눈..한참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물을 주르륵 쏟은거 기억나요? 그렇게 이유도 없이 우리 펑펑 울었었잖아요 자기 눈물을 닦아줄수도, 울지말라고 말할수도 없었어요 그냥 실컷 울도록 두는게 그순간 제가 할수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가 슬픈눈으로 저를 한참 바라볼때 이미 당신의 마음이 전해졌거든요 이사람..너무 미안해하고있구나..라는.. 제마음도 그렇게 아팠는데 당신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때 이 사람...내가 사랑할수밖에 없는 남자구나 라는 결심이 섰던거예요
머리가 나빠서 기억은 잘안나지만 티브인지 영화인지 모르겠지만 왜 날 사랑하느냐고 묻는 여자에게 남자주인공이, 당신은 내가 사랑할수밖는 사람이었다고, 내심장이 그렇게 시켰다고 말한 장면이 기억나요.
1947년 영국에서 출생한 그래험 보넷(Graham Bonnet)은 마블즈(The Marbles)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1960년대 말에 'Only One Woman'이란 곡을 히트시켰는데 이후의 후속곡들은 반응이 미미하였다. 그는 배우의 길로 들어서서 영화 [Three for All]의 주연을 맡기도 하였다.
1979년 그래험은 로니 제임스 디오(Ronnie James Dio)를 대신하여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의 레인보우(Rainbow)에 리드 보컬리스트로 가입하였다. 레인보우의 팬들은 그래험의 제임스 딘(James Dean) 같은 이미지 때문에 당황하기도 하였다. 레인보우는 그래험을 기용하여 [Down to Earth]를 발표하였는데 이 앨범은 레인보우의 앨범 중에서 가장 인기를 모았으며, 'Since You've Been Gone', 'All Night Long'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그 불안정성 때문에, 특히 유명하기도 했던 그룹의 특성 탓에 그 역시 다음 해에 그룹을 탈퇴하였다.
1981년 그는 솔로 활동을 시작하여 [Line Up]을 발표하였으며 'Night Games'가 영국 차트 10위를 기록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그는 마이클 쉥커 그룹(MSG)에 가입하여 앨범 [Assault Attack]을 발표하였으며, 다시 자리를 옮겨 알카트라즈(Alcatrazz)에서 활약하게 된다. 1993년 그는 헤비메틀 그룹 블랙쏜(Blackthorne)에서 'All Night Long'의 새로운 버전을 수록한 앨범을 발표하였다.
Alcatrazz (알카트라즈)
잉베이 맘스틴과 스티브 바이, 그레이엄 보넷 등 Rock계의 거물들이 포진한 바 있는 알카트라즈(Alcatrazz)는, 83년 보컬인 그레이엄 보넷(Graham Bonnet)을 주축으로 결성되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악명 높은 교도소이며, 한번 갇히면 나올 수 없다는 종신형 범죄자들이 수감되어 있는 감옥 이름에서 그룹명을 따온 알카트라즈는 베이스에 게리 시어(Gary Shea), 드럼에 얀 우베나(Jan Ubena), 키보드에 지미 왈도(Jimmy Waldo), 글고 기타에 잉베이 말름스틴(Yngwie Malmsteen)을 라인업으로 결성해 83년 데뷔 앨범인 [No parole from ROck'n'Roll]을 발표한다.
특히 일본과 미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이 밴드는, 레인보우의 후기 작품에서부터 점점 표면화되기 시작한 '네오클래식'의 효시 중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으며 잉베이라는 '대 기타리스트' 탄생의 경종을 울리는 밴드이다. 잉베이를 발탁해서 가입시킨 것도, 그리고 밴드의 성향도 그레이엄 보넷이 레인보우 시절 리치 블랙모어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사료된다. 물론, 그레이엄 보넷이 '쫓겨나'긴 했지만 말이다. 보넷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양복을 입고 나타나자, 리치 블랙모어가 불같이 화를 내며 기타로 후려치려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잉베이가 라이브 앨범인 [Live Sentence]를 끝으로 탈퇴하자, 그 후임으로 또 다른 기타 영웅인 스티브 바이(Steve Vai)가 참가한다. 그의 독특한 기타는 알카트라즈의 음악을 또 다른 세계로 이끌었으나 그 역시 앨범 한 장만을 같이 작업하고 탈퇴해 버린다. 또 다른 후임인, 세 번째 기타리스트인 대니 존슨(Danny Johnson) 을 맞아들여 86년 [Dangerius Game]을 발표하나, 이전과 같은 강렬한 느낌이 많이 상쇄되었다는 평을 들었으며, 이 음반을 끝으로 리더인 그레이엄 보넷이 알카트라즈를 자체 해산시키고 네오클래식 밴드인 Impelliteri에 합류하게 되는 것으로, 밴드의 역사는 막을 내린다.
레인보우부터의 보넷 보컬의 앨범들...
Rainbow
1979 - Down To Earth
Graham Bonnet
1981 - Line Up
1994 - Here Comes The Night
1998 - Underground
MSG
1982 - Assualt Attack
Alcatrazz
1984 - No Parole From Rock 'N' Roll
Live Sentence
1985 - Disturbing The Peace
1986 - Dangerous Games
Impellitteri
1988 - Stand in Line
그레험은 그룹을 옮겨가면서 매번 Since You've Been Gone을 불렀다.
1. Rainbow 의 1979년 Down To Earth 앨범의 Since You've Been Gone
2. Alcatrazz 의 1984년 Since You've Been Gone
3. Impellitteri 의 1988년 Stand In Line 앨범의 Since You've Been Gone
SINCE YOU'VE BEEN GONE
(신스 유브 빈 곤)
[네가 가버렸기에]
I get the same old dreams
(아이 겟 더 세임 올드 드림스)
[나는 같은 꿈을 자꾸 꾼다]
Same time every night
(세임 타임 에브리 나이트)
[매일 밤 똑같은 시간]
Fall to the ground then I wake up
(팔 투 더 그라운드 덴 아이 웨이크 업)
[땅바닥에 주저않고 나는 깬다]
So I get out of bed
(소 아이 겟 아웃 오브 베드)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Put on my shoes and in my head
(풋 온 마이 슈즈 엔드 인 마이 헤드)
[구두를 신고 머리속에선]
Thoughts slide back to the break up
(토우츠 슬라이드 백 투 더 브레이크 업)
[이별에 대한 생각이 기억난다]
These four walls are closing in
(디즈 포어 월스 아 클로징 인)
[벽은 사면이 닫혀있고]
Look at the fix you put me in
(룩 앹 더 픽 유 풑 미 인)
[너가 내게 만든 곤경을 봐]
*Since you've been gone
(신스 유브 빈 곤)
[넌 가버렷기에]
Since you've been gone
(신스 유브 빈 곤)
[넌 가버렷기에]
I'm out of my head
(아임 아웃 오브 마이 헤드)
[나는 제 정신이 아니야]
Can't take it
(캔트 테이크 잇)
[견딜수 없어]
Do not be wrong
(두 낫 비 롱)
[그렇게 하지마]
But since you've been gone
(벗 신스 유브 빈 곤)
[그러나 넌 가버렷으니까]
You cast a spell so break it
(유 캐스트 어 스펠 소 브레이크 잇)
[너는 마법을 걸어서 그것을 부셨어]
Since you've been gone
(신스 유브 빈 곤)
[넌 가버렷으니까]
So in the night I stay
(소 인 더 나이트 아이 스테이)
[내가 머무는 밤에]
Beneath the back street lights
(베니트 더 백 스트리트 라잇스)
[어두운 가로등 아래서]
I read the words that you sent to me
(아이 리드 더 워드 뎃 유 센드 투 미)
[너가 보낸 편지를 읽는다]
I can take the afternoon
(아이 캔 테이크 더 에프터눈)
[밝은 날(오후)은 견딜수 있지만]
But night comes around too soon
(벗 나이트 컴 어라운드 투 순)
[밤이 너무도 빨리 오지]
You don't know what you mean to me
(유 돈트 노우 왓 유 민 투 미)
[네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넌 몰라]
Your poison letters
(유어 포이즌 레터스)
[너의 독약같은 편지]
Your telegram
(유어 텔레그램)
[너의 전보]
Just goes to show you don't give a damn
(저스트 고우스 투 쇼우 유 돈트 기브 어 댐)
[네가 내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아]
(Repeat *)
Since you've been gone
(신스 유브 빈 곤)
[넌 가버렷으니까]
If you ever come back
(이프 유 에버 컴 백)
[너 다시 오면]
Baby you know, you'll never do wrong
(베이비 유 노우, 유 일 네버 두 롱)
[베이비(그냥 다정하게 부르는말) 너 알지 나쁘게 하지마]
보너스로 Since You've Been Gone과는 다른 Since You Been Gone ^^
4.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 의 Since You Been Gone
Here's the thing
We started out friends
It was cool, but it was all pretend
Yeah, yeah, since you been gone
You dedicated, you took the time
Wasn't long, til I called you mine
Yeah, yeah, since you been gone
And all you'd ever hear me say
Is how I pictured me with you
That's all you'd ever hear me say
뭐 하나 말해줄게요
우린 친구로 시작했어요
너무 좋았지만 사실은 모두 거짓이었답니다
그래요, 당신이 떠난 후 알게 됐어요
당신은 헌신적이고 노력도 했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를 내것이라고 부르게 됐어요
그래요, 당신이 떠난 후에 알게 되었어요
나는 종일 그대에게 이런 얘기만 했죠
우리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이 어떤지..
내가 얘기한 건 그것뿐이었죠
But since you been gone
I can breathe for the first time
I'm so moving on, yeah yeah
Thanks to you now I get what I want
Since you been gone
하지만 당신이 떠난 후
나는 처음으로 숨통이 트였어요
이제 과거는 잊고 앞으로 나아갈래요
당신 덕분에 난 이제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되었어요
당신이 떠난 후..
How can I put it, you put me on
I even fell for that stupid love song
Yeah, yeah, since you been gone
How come I'd never hear you say
I just wanna be with you
Guess you never felt that way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 ? 당신은 날 가지고 놀았어요
바보같이 그 한심한 사랑노래에도 넘어갔죠
그래요, 당신이 떠난 후 알게 되었어요
당신은 한번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죠
'너와 함께 있고 싶을 뿐이야'라는 말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나 봐요
But since you been gone
I can breathe for the first time
I'm so moving on, yeah yeah
Thanks to you now I get what I want
Since you been gone
하지만 당신이 떠난 후
나는 처음으로 숨통이 트였어요
이제 과거는 잊고 앞으로 나아갈래요
당신 덕분에 난 이제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되었어요
당신이 떠난 후..
You had your chance, you blew it
Out of sight, out of mind
Shut your mouth, I just can't take it
Again and again and again and again
당신은 주어진 기회를 날려버렸어요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잊혀지는 법이라고 하죠
입 다물어요
매번 같은 일을 당할 수는 없어요
Since you been gone (since you been gone)
I can breathe for the first time
I'm so moving on, yeah yeah
Thanks to you (thanks to you)
Now I get, I get what I want
I can breathe for the first time
I'm so moving on, yeah yeah
Thanks to you (thanks to you)
Now I get (I get)
You should know, that I get
I get what I want
당신이 떠난 후 (당신이 떠난 후)
난 처음으로 숨통이 트인 기분이에요
이제 과거는 잊고 앞으로 나아갈래요
당신 덕분에(당신 덕분에)
이제 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되었어요
처음으로 숨통이 트였어요
이제는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갈래요
당신 덕분에(당신 덕분에)
이제 나는,
알아둬요, 이제 난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되었어요
Since you been gone
Since you been gone
Since you been gone
나는 오늘도 마음의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내 평생 공사를 완료하지는 못할 것은 알고 있습니다. 이는 나뿐이 아니라 다른 사람 내 주위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 입니다.
평생 마음의 공사를 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아닐까 싶다.
양약부지(佯若不知 : 알고도 모르는 체함)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이 과연 행복할지는 모르지만, 사회 생활을 하려면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아닌가...
이사위한(以死爲限 : 죽음을 각오하고 일을 하여 나감)을 해 나가지 않는다면 인생에서 승리할 수 없지 않은가...
블리자드는 게이머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게임 개발자는 대부분 게이머입니다. 따라서 블리자드는 게임 개발자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GDC(Game Developers Conference)는 게임 개발자를 위한 컨퍼런스입니다. 당연히 블리자드 출신의 강연은 그들 사이에서 인기가 매우 높았습니다. 기자실(Press Room)에서 기자들에게 나눠 줬던 강연 하이라이트가 적힌 ‘전단지’에도 ‘Big Name’이라는 굵은 글씨 아래 ‘눈보라(Blizzard)’는 어김없이 있더군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수석 기획자였고, 현재는 블리자드 게임 기획 부서의 부사장(Executive Vice President)를 맡고 있는 롭 팔도(Rob Pardo)가 GDC 2010 강연에 나섰습니다. 강연을 많이 해서 그런지, 그는 능숙한 태도로 ‘블리자드의 게임디자인 철학’이라는 매력적인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원제는 이렇습니다. Making a Standard(and Trying to Stick to it!): Bizzard Design Philosophies. GDC 2010이 끝난지는 다소 시간이 지났지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샌프란시스코(미국)=시몬
블리자드 게임 디자인 부사장 롭 팔도.
강연에 앞서 롭 팔도는 “우리의 게임 디자인 가치관이 여러분 스튜디오에 맞지 않을 수 있다. 게임 디자인의 가치관은 여러분 스스로 무엇이 여러분 게임에 중요하고, 필요한지 판단하여 각자 적합한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규모가 큰 스튜디오나 부서의 경우 구성원 모두가 현재 어떤 작업이 진행 중인지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이런 작업이 더욱 필요하다. 여러분 게임이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블리자드의 가치관이 아니라 여러분만의 가치관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깔았습니다.
이후의 기사 내용은 별도의 살을 붙이지 않고, 현장 강연의 뼈대를 가급적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프레젠테이션 시작과 동시에 환호와 휘파람 소리~.
① 게임 플레이 우선
간혹 기술을 강조하는 스튜디오도 있지만, 우리는 ‘게임의 재미’를 중시한다. 그러나, 이 말이 게임 디자인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뜻은 아니다. 자칫하면 플레이어들은 재미 없어 하는데, 디자이너에게만 재미있는 게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 <워크래프트 3>의 세계관에 따르면 드루이드는 나이트엘프 남자만이 가능했다. 하지만 크리스 맷젠은 고민 끝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에서 이 세계관을 수정해 나이트엘프 남녀 모두 드루이드가 가능하도록 변경했다.
이런 예는 또 있다. <WoW> 초기에 얼라이언스에 성기사, 호드에는 주술사가 있었고, 두 클래스는 확연하게 다르게 디자인됐다. 그러나, 게임 밸런스를 맞추면서 두 클래스는 점점 닮아 가게 되었고, <WoW>의 첫 확장팩 <불타는 성전>에서는 세계관을 수정해 양쪽 진영 모두 성기사와 주술사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게임디자인은 항상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해야만 한다.
② 접하기는 쉽게, 마스터는 불가능하게
이 콘셉은 블리자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스튜디오가 가지고 있는 콘셉이다. 게임 초기엔 간단한 플레이 방법과 확실한 목표만을 알려 주고, 게임 진행 중에 플레이어 간의 레벨을 나눌 수 있는 도전과제를 제공한다.
‘처음 접하기는 쉽게, 마스터는 힘들게’를 블리자드 식으로 다시 읽으면 ‘배우기는 쉽게, 마스터하기는 불가능하게’라고 할 수 있다.
<WoW>가 플레이하기 쉬운 게임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WoW>는 굉장히 하드코어한 게임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수백 시간의 플레이가 필요하며 오리지널에서는 40명, 현재는 25명의 플레이어를 이끌어야 하는 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롭 팔도는 주제 별로 실패한 케이스, 성공한 케이스를 번갈아 소개했다.
<디아블로 2>는 이 부분에서 실패한 경우고, <WoW>는 성공한 경우다.
우리는 <디아블로 2>에서 게임 내 경제를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플레이어들은 우리 예상보다 빨리 골드를 모았고, 대부분의 골드를 마을 창고에 쌓아 두는 방법으로 죽었을 때 일정량의 골드를 드랍하는 패널티도 쉽게 피해갔다.
결국 게임 내 골드는 의미를 잃게 됐고 대신 ‘조단의 링’이 물물교환의 기준이 되는 걸 볼 수 있었는데, 이는 결코 우리가 의도한 사항이 아니었다.
그래서 <WoW>에선 골드 수입을 좀 더 세밀하게 관리했다. <디아블로 2>에서 실패했던 내구도 시스템을 이용한 골드 환수에도 성공했다. 플레이어의 골드는 잠식되지 않고 경매장 등을 통해 끊임없이 회전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 <스타크래프트 2>의 멀티플레이와 <WoW>의 클래스 디자인.
③ 게임의 깊이가 우선이다
게임의 깊이를 결정하는 작업은 게임 디자인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이며,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어떤 스튜디오는 싱글플레이 개발에 2년을 쏟고 마지막 3개월을 멀티플레이에 투자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생각한다. 싱글플레이는 <파이널 판타지>와 같은 게임이 약 70시간의 플레이 타임을 갖는 반면, 멀티플레이는 몇 달, 몇 년을 두고 수백 시간에 걸쳐 플레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많이 플레이하는 부분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스타크래프트 2>의 멀티플레이 역시 싱글플레이 제작 시간의 몇 배가 소요됐다.
<WoW>의 클래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클래스마다 메커니즘이나 레벨의 성장에 따른 기술을 걱정하기에 앞서 이 클래스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고 얼마나 재미있는지 먼저 고려했다.
그 후에 인터페이스를 생각하게 되는데, 상당히 복잡한 게임 시스템을 플레이어가 보다 쉽게 접근하도록 해야 하므로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게임 내 영웅의 정의를 다시 쓰다.
④ 환상이란?
<WoW>의 플레이어가 드레나이 성기사의 콘셉 이미지를 처음 보는 순간, 그 캐릭터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된다. 아마도 성기사이니 힐러면서 생명을 구하는 역할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스타크래프트>의 영웅이라면 스토리의 중심이며, 필드에선 가장 강력한 유닛이고, 전투에서 군대를 이끌며,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역할을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미션에서 <스타크래프트>의 영웅은 보호를 받아야 했으며, 영웅이 죽을 경우 미션도 실패했다.
우리는 영웅을 플레이한다는 것에 대한 환상이 무엇인지 <워크래프트 3>의 영웅으로부터 배웠다. 영웅은 가장 강력한 유닛이며, 소규모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죽을 경우 부활이 가능하도록 디자인됐다.
⑤ 모든 것을 강력하게
모든 클래스와 유닛은 플레이어가 느끼기에 어떤 것도 이들을 멈출 수 없다고 여겨질만큼 강력한 느낌을 전달하도록 디자인한다.
모든 메인 캐릭터의 키가 150cm였다고 전부 그것에 맞출 필요는 없다. 스토리와 세계관에 녹아들 수 있는 선에서 다르게 디자인할 수 있다. 평범하게 밸런스를 맞추지 않고 각 종족과 클래스마다 모두 다른 느낌이 들도록 밸런스를 맞춘다.
⑥ 냉정함을 유지하라
<WoW>를 제작했을 때 <워크래프트 3>의 영웅 각각을 클래스로 만들기보다 <WoW>의 클래스에 <워크래프트> 영웅의 특징이 녹아 들게 디자인했다. 예를 들어 <워크래프트 3>의 영웅 중에서 마운틴킹과 블레이드마스터, 타우렌칩튼의 능력을 골고루 갖도록 디자인된 클래스가 <WoW>의 전사였다.
아울러 플레이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복잡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WoW>의 PvP는 빠른 속도의 전투가 전개되는 와중에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한 눈에 파악되도록 복잡성의 한계를 정의했다.
기막힌 아이디어도 남용하면 엉망이 된다.
<WoW>의 탈것은 이런 복잡성의 한계 조절에 실패한 경우다. 반면, <스타크래프트 2>의 유닛은 성공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WoW>의 탈것은 원래 겨울손아귀 전장에서 탈것을 이용한 무기의 개념으로 시작됐으나, 아이디어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게임 곳곳에 적용하다 보니 냉정함을 잃어버렸다. 엄청나게 매력적인 시스템이라도 마구 적용하기보다 시간을 갖고 천천히 적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의 유닛을 <스타크래프트 2>의 유닛에 이식하는 과정은 성공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위해 ‘15 유닛 규칙’을 적용했다. 어떤 신규 유닛이 하나 추가되면 기존 유닛 중 하나가 빠져야 한다.
⑦ 게임 플레이는 스토리를 말해 주지 않는다
게임의 스토리는 플레이를 통해 경험하게 해 줘야지 보여 줘서는 안 된다. 스토리는 주로 텍스트와 성우, 영상을 통해 전달한다. 스토리텔링에 있어 <디아블로 2>는 실패한 경우다. 하지만 <워크래프트 3>의 미션 브리핑은 성공한 경우다.
<디아블로 2>의 의미 없는 랜덤 몬스터 처치와 의미 없는 루팅 이후 각 액트의 보스를 죽였을 때 일방적으로 스토리를 듣게 하는 방법이나, <WoW>에서 15개의 쪽지를 모아서 스토리를 만드는 퀘스트의 경우 플레이어들이 모자란 쪽지를 경매장에서 구입함으로써 제대로 스토리텔링이 전달되지 않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워크래프트 3>의 미션 중 아서스가 마을 사람들이 언데드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사람을 죽이고 마을을 파괴하는 미션은 반대편에서 말가니스 역시 언데드 병력을 모으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미션 경험을 통해 스토리를 잘 전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플레이 경험을 통한 스토리텔링 디자인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WoW>의 죽음의 기사 스토리 역시 훌륭한 스토리텔링의 예다. 죽음의 기사 퀘스트는 죽음의 기사가 리치왕에 반대해 플레이어의 편에 서게 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다.
⑧ 보너스로 만들어라
<WoW>의 베타테스트 시절 휴식 시스템은 어느 정도 시간 이상을 플레이하면 경험치 보상이 50%로 줄어드는 것으로 설명되어 베타 플레이어들의 엄청난 원성을 샀다.
그런데 <WoW>가 정식으로 서비스됐을 때 처음에 200%의 경험치를 얻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100% 경험치를 얻게 된다고 설명했더니 원성이 싹 가라앉았다. 사실 두 이야기는 똑같은 것이지만 플레이어의 심리가 잘 드러난 예로 볼 수 있다.
<에버퀘스트>에서 빠른 레벨링이라면 경험치를 많이 주는 몬스터를 반복해서 빠르게 잡아야 했지만, <WoW>의 레벨링은 수집 퀘스트, 처치 퀘스트 등 다양한 퀘스트를 넣어 그 과정을 재미있게 디자인했다.
<디아블로>에서는 인벤토리에 포션을 가득 넣고 전투 도중 반복해서 눌러 줘야 했지만, <디아블로 2>에서는 몬스터를 때리면 피가 차는 옵션을 장비에 적용해 포션 사용은 줄이면서 게임플레이 속도는 그대로 유지하도록 디자인했다.
<WoW>에서 상대의 장비를 보는 경우 ‘누가 누구를 살펴보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왔는데, 플레이어들은 이 메시지가 나오면 “누군데 나를 보는 거야?”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곤 했다. 원래는 플레이어의 좋은 장비를 남들이 많이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뜻에서 출발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아 삭제했더니 모두가 만족한 경우도 있었다.
수집 퀘스트도 퀘스트 아이템은 랜덤하게 떨어지도록 했으나, 한 지역에 플레이어가 많을 경우 어떤 플레이어는 피해를 볼 수 있었다. 이에 하나의 퀘스트 아이템을 줍게 되면 다음 기회가 더 높아지도록 시스템을 개선해 랜덤성은 유지하면서 플레이어를 만족시켰던 사례도 있다.
⑨ 콘트롤이 왕
콘트롤은 플레이어가 게임과 상호작용을 하는 최우선 수단이다. 콘트롤은 즉각 반응될수록 좋기에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WoW>에서 말을 탈 때 원래는 말을 부르면 나타나서 올라타는 애니메이션을 적용하려고 했다가 전부 삭제했다. 또, 마법 사용 시 멋진 동작이나, 일어설 때 [W] 키를 누르자마자 바로 전진할 수 있도록 일어나는 동작을 생략했다.
<워크래프트 3>를 개발할 때 특정 상황에서 커서가 느려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개월을 소비한 적이 있는데,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선 상당히 섬세한 노력이 요구된다.
<스타크래프트>의 프로게이머는 분당 400번, 즉 초당 6~7번의 마우스 명령을 내리지만, 일반인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게임이 이런 빠른 반응을 지원할 수 있어야 플레이어 간의 차별화를 둘 수 있으므로 이런 작업은 중요하다.
프로게이머와 일반 게이머의 차이를 구분해 주다.
⑩ 튜닝
튜닝은 하기 쉽지만, 잘 하기는 어려운 과정이다. 튜닝을 할 때 누구를 위해 튜닝하고, 왜 튜닝을 하는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의 캠페인을 튜닝할 때 기존의 메커니즘을 알고 있다는 가정 아래 진행했다. 즉 <스타크래프트> 베테랑을 위해, 처음 캠페인을 클리어한 플레이어를 위한 도전과제를 고려하고 난이도는 없애는 등의 콘셉으로 작업이 이뤄졌다.
<WoW>는 홀로 플레이해도 최고 레벨에 이를 수 있으며, 레벨과 퀘스트를 적절한 수준으로 묶는 작업이 성공한 경우다. 플레이어는 퀘스트 목록에서 퀘스트가 없어지기 시작하면 뭔가 잘 못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⑪ 특종을 피하라
디자이너들이 작업하다 보면 완벽해지기 전까지 남에게 보여 주기를 꺼려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게임에 적용해 보기 전까지 해당 아이디어가 게임과 제대로 어울릴지 말하기 힘들므로, 작업 도중 모두에게 자주 보여 줘야 한다.
자신의 작업에 대한 타인의 의견을 반영해 작업물의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실패했을 경우 너무 다그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반복’은 블리자드 개발 프로세스 중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WoW>의 실버문 도시는 너무 커서 부분 별로 작업했으나, 마지막까지 서로 맞춰 보질 않아서 완성까지 1년이 걸렸고, 만든 후에도 거대하긴 했지만 실제 플레이에 응용하기 힘들었던 어려움이 있었다.
반면 아라시 전장은 아주 기본적인 콘셉부터 개발 중간 과정이 모두 공개되고 경험하게 함으로 써 멋진 전장이 되었다.
작업 과정은 팀원 모두와 공유한다.
⑫ 항상 광택을 내는 습관
게임을 좀 더 빛나게 만드는 작업은 프로젝트의 끝에 하는 것이 아니다.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작업하는 기간 내내 작품을 빛내는 작업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팀이 좋아하는 게임을 더 좋게 만든다는 생각으로 모두의 목소리가 중요하고, 타인의 의견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BONS(Blizzard Online Network Services)팀은전체네트워크를관리합니다. 워싱턴, 캘리포니아, 텍사스, 매사추세츠, 프랑스, 독일, 스웨덴, 서울, 중국, 대만에있는데이터센터의블레이드서버 (같은자리에여러대를넣을수있는소형서버) 13,250대는 CPU 코어 75,000개와메모리 112.5 TB를자랑합니다. 직원 68명이기상정보까지점검하며전세계와우서버의연결상태를지켜보고있습니다. 미국과유럽의블레이드서버대수는 515라고하며중국에서는현지서비스회사가보유한슈퍼컴퓨터가자국상위등수를차지하기도했습니다.